Sep 13, 2017

핀치러너 조서, 오에겐자부로








1. 사후에 관해서는 늘 생각하죠. 그걸 비전으로 삼아서 보거든요. 이 내가 없이, 또한 나에 관한 기억조차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 세상에 살아남은 자식에 의한, 내 사후의 비전이지만요. 내가 죽으면 아들은 곧 나에 관한 기억을 잊어버리겠죠. 아들의 머리에서 기억의 단편들이 이것저것 솟아오르더라도, 아들은 그것을 재구성해서 자기자신에게 혹은 타인에게 죽은 아버지 상을 표현수는 없을 테니까요, 그러니까 내 사후는 아들의 육체와 의식 속에서, 다시금 절대적인 무 일수밖에 없죠. 아직 살아있는 내가 그것을 생생한 비전으로 보는 거지요.





2.덧붙여 나를 기쁘게 한 것은, 융 자신이 꿈속에서 만난 요가승의 <무의식의 출생 이전의 전체성>이라는 사고였다. <저쪽>의 무의식속에 전체성이 있다. 그곳으로부터 전체성이 결여된 상태로서의, <이쪽>의 의식이 나오는 것이다. 융의 또 다른 꿈, 마법의 환등기의 렌즈가 달린 상자가 되어 하늘을 나는 원반, <우리들은 언제나 하늘을 나는 원반이 우리들의 투영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들이 그들의 투영이 된 것이다. 나는 마법의 환등기에 의해서 c.g.융으로 투영되고 있다. 그러나 누가 그 기계를 조작하고 있는가?>




3.이것도 교육을 위해서요! 무슨교육? 타인과 싸워야만 한다는 교육. 타인이 모리의 인생의 자연스러운 진행을 방해한다는 사실. 그래도 계속 진행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핀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때로는 타인의 진행을 방해하여야만 하고, 타인을 쓰러뜨리기도 해야 한다는 사실.





4.그런데 나를 아가씨라고 부르지 말아 주세요, 메일 쇼비니즘은 싫어요. 나는 사요코라고 해요 애당초 내 이름에 붙여진 문자는 노골적으로 여성을 멸시하는 문자였기에, 나 자신이 문자를 선택했어요.





5. 어떤가, 기분은? 모리. 사요코 씨와는 잘 돼가나? 지금은 어딘지 여유를 보이며, 나를 애송이 취급하고 있는건가? 아직아내를 추방하지 못하고 있던 시절 즉 <전환>되기 전에, 나는 네가 성적으로 성숙하는 날을 대비해서, 이따금 너와 관계를 가져달라고 아내와 교섭했었지. 근친상간이 조악이라고는 하지만, 애당초 너의 미래를 막은건 그 죄악의 기준을 이루는 초월자니까, 죄를 상쇄시키는 게 되잖나?






6. 그리하여 퍼내틱(fanatic)하고 센티멘틀한 발작이 일단 진정되자, 침대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지. 바로 그 전지하는 힘이, 즉 프랑스어 공부때에 배운 une force qui va가 말이오, 나를 무작정 무분별한 행동으로 내몰려고, 잠자코 있지 못하게 한 거요.





7. 쇠파이프 따위의 통상적인 무기를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쌍방이 접근해서 통일을 꾀할 있는가의 가능성을, 역설적으로 타진하는 파벌 투쟁이 아니었을까?





8. 기동대의 규제 비판으로 시작해서, 자신들이 열었던 집회는 권력으로부터 인민들의 손으로 핵의 주도권을 되찾겠다는 시민집회이지, 직접 혁명 당파의 영향하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시민 집회를 파괴하러 온 자들은 파시스트이고 건달일뿐만아니라, 핵권력의 용병이기도 하다고 그녀다운 주장으로 시종일관했지.






9.
"우선 스스로 결의 하면, 본질적으로는 그것을 외부에서 뒤집을 수가 없다더군요, 왜냐하면 인간은 폐쇄된 체계이기 때문이래요."
"그건 구조주의, 오히려 사이비 구조주의요!"






10.
"설령 <믿지 않더라도 성수나 미사를 받으면, 바보처럼 되어 믿게되리라>고도 말했어요, 이말은 전적으로 반동적인 느낌을 주지만."
"파스칼이로군! abêtir, abêtira!"
"이런인용을 말이죠, 과정적인 전향적 의미를 이끌어내려고 사용한거예요. 올바른 원리에 도달하기 위해서라면, 과정적으로 속임수를 쓰더라도 괜찮지 않느냐고. 예를 들자면 레닌에게 속아서 혁명에 참가한 것은, 올바른 길을 선택한 것이었죠? 홍위병이 만약 어리석게 믿고 있었다 하더라도 그 대상이 올바른 마오쩌둥 사상이라면 상관없잖아요? 믿고 활동하는 편이 별 생각도 없이 활동하는 편보다는, 역사의 실현에 있어서 유리하지 않겠어요?"
"유물론적 파스칼의 도박!"
"난센스!"





11. 네 개의 뇌가 미성숙 상태로 황혼 속에 갇혀있던 안정기로부터 느닷없이 각성하게 되어, 생각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능력을 갑자기 지니게 된것은, 무엇보다도 우선 괴로운 사색과 고뇌의 심연으로 빠져들게 된다는 뜻이 아닐까?





12. 그러면, 무익한 토론은 여기에서 중단하고, 실제적인 활동을 시작해요! 먹을 건 먹고. <전환>된 것이, 달릴 수가 없는, 혹은 달려야한다는 사실을 아직 모르는 그런 자들을 위해서 핀치러너가 되는 것이라면 지금이라도  달려야 할지 모른다고도, 모리, 말했잖아요? 그렇다면 어서 달려요. 저는 당신이 와서 함께 구원 활동을 해주었으면 해요. 어제와 오늘의 손실을 회복해야돼요!"



13. 그런 반면에 나는 밀폐된 1.2M X 1.2M X1.7M의 직육면체 마이너스, 기와색 돌덩이를 얹어 놓은 열원 + 벤치의 높이 + 오우노와 내 부피라는 계산으로 양을 알 수 있는 뜨거운 공기를 향해, 내가 방귀를 뀌면 얼마나 비참할까, 만약 그녀가 방귀를 뀌면 더 더욱 . . .하고 쓸데없는 망상에 빠져 엉덩이를 움씰거리기도 했지, ha, ha. 열여덟 살이란 얼마나 다루기 힘든 나이인가!?





14. 오우노 사쿠라오의 얼굴에 있는 모든 곡선이 사라지더니, 마치 상자 모양의 거북과 비슷한 모습을 불쑥 드러내며 나를 주시하는거요.





15.우리들은 이따금 자신의 생각과는 반대로 경애하는 인간을 모욕하는 잘못을 저지를 때가 있잖소? 그리고 그건 목숨이 두 세 개 있더라도 보상할 수 없는 큰 잘못이잖소? 바로 당신처럼 <전환>해서 고군분투하는 인간조차도?





16. 이 지구상의 현대 세계가 이제는 우주적 종말에 가까우니, 그 종말적 방향성을 향해서 가속되는 우주적 힘이 당연히 지상의 모든 측면에 왜곡과 균열을 초래하고 있다. 그 결과 일상적인 눈에는 기괴하게 보이는 갖가지 현상을 야기시키고 있다.





17. 나는 한 개인의 갖가지 상상에 인류적 근거가 있다고 생각하니까. SF 작가들을 공통적으로 뒤흔드는 이 상상에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나도 똑같은 줄거리를 만들어 봤지요. 그 줄거리를 만드는 과정에서 전 인류의 숙명을 새삼 확신한 거요, 아하하. 내 추정으로는, 이 지구는 우주적인 거대한 구조의 한 부품이며, 그 위치해야할 장소를 향해서 벨트 컨베이어 식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오! 은하계 우주 전체가 설계도의 해당장소로 지구를 유도하는 벨트 컨베이어이며, 최종 단계에서는 지구를 타당한 방향과 에너지로 쏘아 올리는 발사대가 되는 거지요. 그리고 인류가 이제까지 살아온 지구라는 부품이 빈자리에 철컥 끼여 들면,구조가 완성되는 거요! 하지만 준비단계에서는 모든부품이 그렇듯이, 지구라는 부품에도 미세한 균열은 있지요.





17-2. 마지막으로 그것을 수정하기 위해서는, 우주적 규모로는 생각할 수 없는 초정밀 공작자가, 즉 인류만이 아니라 짐승, 새, 물고기 그리고 곤충들까지도 필요했던 거요. 저는 말이지요 그 마지막 마무리가 지구표면의 곳곳에서 발생하는 핵폭발이라고 생각해요. 사막이나 외딴 섬에서의 폭발은 이미 완료되었죠. 다음은 두 번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아직 핵폭발이 없었던 장소에서의, 즉 대도시에서의 핵폭발이지요. 그러면 결국 필요한 규격으로 조정된 부품, 즉 지구가 은하계 우주 발사대에서 발사되어 궁극의 구조에 찰칵 끼여들게 되는거요!





18. <의인>이 페시미스틱할까요? 그는 곤란의 상한과 하한을 잘 파악해서, 지나치게 희망에 차 있지도 않고 지나치게 저망하지도 않으면서 실제적인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게 아닐까요? 당신이 당파간 대립의 본질을 잘 파악하면서, 그와 동시에 중재활동을 하는것과 마찬가지 아니에요?





19. 페시미스틱이라는 이야기 말입니다만, 핵무기 현황이나 세계적인 원전 개발 현황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은 페시미스틱하게 되는 게 기본적으로 당연하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하지만 여전히 인간은 일반적으로 옵티미스틱하지요, 봐요 저기 환풍기를 조절하고는 공이라도 세운듯한 얼굴을 하고 있는 가게 사내가 있잖소? 2,30년 후면 저 인간도 죽겠지요. 하지만 그 단순하면서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을 잊고 저렇게 행동하고 있지않습니까?





20. 아니 서로 잘 사귀는것은, 공동으로 행동에 옮길때 불가결한 조건이니까요.





21. 화해를 위하여 장해를 없애는 모임 - 모든 핵권력에 반대하여 원전을 거부한다





22. "강대국이 핵무기를 독점하고 있는것이 현실이라면, 약소 국가에도 핵무기를 보유해서 상황을 유동화할 권리는 있지 않습니까? 그와 마찬가지로 국가가 민중을 인질로 핵무기를 독점하고 있는 이상, 당파 또는 개인이 핵무기를 개발하더라도 저항의 원리에서 이상할 건 없지 않겠소? 구체적으로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피폭자들과  그 2,3세가 죽은 친족들을 대신해서 자신들의 핵무기를 만들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 있는 인간이 있을까요, 이 현대세계에?"
"그런것이었군! 그런식으로 핵에 관한 상대적인 생각이 반원전 운동가 제군들에게도 있다면, 아까 내가 말했던 페시미즘 따위는 말도 안되는 이미 그런 단계가 아닌가!? 기가 막히고 나발이고, 지금 실제로 원자폭탄이 만들어지고 있잖소!? 하지만 실제로 어떤 젊은이 들이 그런 짓을 하고 있는 걸까 어떤 지하공장일까!?





23. 무엇인가 적극적인 요소를 발견하려면 퇴폐밖에 없다구!





24. 커다란 문어의 피부같은 포장 도로가 당장이라도 색소의 범람과 근육의 율동을 시작하여 그 일대의 모습이 완전히 바뀌는, 바로 그 직전과도 같은 느낌이었지.





25. 아내, 옛 아내의 물질화된 시선





26.내 육체를 앰프 스피커 삼아, 모리의 정신이 발하는 정전기를 재생 증폭시켰던 그날 밤의 연설, 땅이 흔들릴 정도로 무겁게 접근하여 모리와 나를 뒤덮었던, 그들의 이의 없는 난센스의 제창.





27.근거를 이루는 논리는, 공통의 지표다.





28.지금처럼 무의미한 야유를 합창하는 것도 난센스다! <지원 중재인>의 융화주의적 난센스? 융화주의 비판에는 찬성. 싸움은 어디까지나 첨예화 되는 것만이 유일한 전개이니까!





29. 복잡함을 극복한 곳에야말로 단순한 말이 달성되는 거다.





30. 이 무시무시한 정보는, 무슨일에나 상상력을 동원하지 않는 무관심층에게야말로 가장 잘 침투되어 있다!





31.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들이 찾아낼 수 있도록 부지런히 뛰어가는 거요!





32. 그렇다고 정치 상황을 그렇게 단순화 시켜도 괜찮은가요? 어째서 그렇게 한 사람의 인간을 절대화해서 반대 당파를 파시스트라고 단정하나요?





33. 달빛이 내 뒷머리를 붙잡네! 하는 노래 가사가 울려 퍼지자, <유능한 관리>가 동그란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며 말하는거요. "애매모호주의로군" "그렇지 옵스큐런티즘."





34.언제나 구심력이 멤버들을 게릴라의 핵심으로 끌어들여, 멤버들이 그 힘을 서로 의식하고 있으니 일부러 내부에서 충성심을 확인하지 않아도 되고 배신도 생기지 않지.





35. 이제까지 얼마나 운동을 계속했느냐보다는 이제부터 언제까지 운동을 계속하느냐가 중요하잖소?





36.에릭슨 식으로 말하자면, 청년기의 <아이덴티티의 위기>를 갖가지 국면에서 경험하고는 비로소 자신은 도대체 무엇때문에 이 지상에 태어났는가를 과부족없이 파악하여, 결국에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완수하려는 사내의 온화한 슬픔마저 드러낸 얼굴이었지.





37. 리- 리- 리- 리- 리- 리-